한 건물에 세 신을 모신다.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 셋 다 부처나 보살이 아니다. 산신은 한국 산악신앙의 신, 칠성은 중국 도교에서 온 북두칠성의 신, 독성은 홀로 깨친 성자 나반존자(那畔尊者)다. 절은 이 셋을 산신각·칠성각·독성각에 따로 모시기도 하고, 한 채에 모아 삼성각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사이트 집계에서는 269곳에 있어 산신각(296곳) 다음으로 흔한 각이며, 삼성전·삼신각이라 쓴 곳도 몇 있다.
왜 '전(殿)'이 아니라 '각(閣)'인가
절집 이름에는 위계가 있다. 부처와 보살을 모신 건물은 대개 전(殿), 신앙의 격이 그보다 낮다고 본 존재를 모신 건물은 대개 각(閣)이라 부른다. 민족문화대백과는 산신·칠성·독성을 불교 밖에서 들어온 신으로 보고, 불교 교리에 익숙하지 않은 신도를 이끌기 위한 수단(방편)으로 받아들인 것이라 전이 아니라 각이라 부른다고 설명한다. 다만 나한전·조사전처럼 부처가 아닌 분을 모셔도 '전'인 경우가 있어 절대 규칙은 아니다. 또 칠성각의 주존 치성광여래는 북극성을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낸 여래다.
무엇을 비는 곳인가
민족문화대백과는 셋을 각각 재물·수명·복을 맡은 존재로 보고, 전통신앙인 삼신신앙(三神信仰)과 섞인 흔적으로 읽는다. 산신에게는 자식과 재물을, 칠성에게는 수명을, 독성에게는 말세 중생의 복을 빈다. 일반 서민층은 대웅전 같은 중심 법당보다 독성각에서 불공을 드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불교의 교리와는 거리가 있지만, 사람들이 절에 와서 실제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건물이기도 하다.
한국에만 있는 건물
산신 신앙은 불경에 근거가 없고, 나반존자라는 이름도 어떤 경전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한국 불교사의 초기·중기 사찰에서는 산신각·칠성각·독성각이 보이지 않고, 조선시대에 들어 차츰 나타난다. 억불 정책 아래 수명과 복을 비는 서민 신앙을 절 안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본다. 그래서 삼성각(과 산신각·칠성각·독성각)은 한국 불교가 토속 신앙과 섞인 과정(습합)을 건물 하나로 보여주는 증거로 꼽힌다. 나반존자 신앙은 중국·티베트·일본 불교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한국 특유의 것이다.
언제 생겼나
지금 남아 있는 산신도는 대부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 것이고, 독성도도 대개 19세기 이후 것이다. 연대가 확실한 이른 산신도로는 함양 용추사 산신도(1788)가 있다. 1719년 해인사가 의식집 『제반문』을 다시 찍으며 붙인 발문(책 끝의 글)을 보면, 독성 신앙은 늦어도 그 전부터 행해졌다.
변형
- 삼성각 안에 고려 말 세 고승 지공·나옹·무학을 '삼성(三聖)'으로 모시고 칠성·독성을 곁들이는 절도 있다(민족문화대백과).
- 독성·산신·용왕을 함께 모시는 조합도 있다.
안에 무엇이 있나
보통 조각상보다 탱화(불화)로 모신다. 산신도는 백발에 수염이 긴 노인이 호랑이에 기대 앉은 모습, 칠성도는 가운데 치성광여래(북극성을 부처로 높인 이름)를 두고 좌우에 일광·월광보살, 그 둘레에 칠여래와 북두칠성의 일곱 별 신인 칠원성군을 그린 모습, 독성도는 머리가 희고 눈썹이 긴 늙은 스님(비구)이 바위 위에 앉은 모습이 전형이다. 세 그림이 한 건물에 나란히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