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신을 모신 건물. 산령각(山靈閣)·산왕각(山王閣)·산신당이라고도 한다. 한국 절 대부분에 있으며, 이 사이트 집계에서도 296곳으로 대웅전(602곳) 다음으로 흔한 전각이다. 현판 이름은 산신각(259)이 대부분이고 산령각(51)도 쓴다. 한 절에 현판이 둘 이상인 경우가 있어 현판 수 합이 절 수보다 많다.
누구를 모시나
산신은 불교의 신이 아니다. 산왕·산령·산군이라고도 부르며, 일찍부터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림(산신도) 속 산신은 백발에 수염이 긴 노인이 깊은 산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호랑이에 기대 앉아 있는 모습이 전형이다. 호랑이는 산신의 심부름꾼이나 산신이 모습을 바꾼 것(화신)으로 여겨진다. 드물게 여성형 산신을 그리기도 하고, 상 없이 그림만 걸기도 한다.
어떻게 절 안에 들어왔나
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을 따르면 순서는 이렇다. 처음엔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호법신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졌고, 나중에 원래 성격이 불교 안에서 되살아나 독립된 건물을 얻었다. 불교 문헌에는 16세기부터 산신 기록이 꾸준히 보이지만, 한국 불교사의 초기·중기 사찰에서는 산신각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조선시대에 들어 차츰 나타난다. 불교 교리에 익숙하지 않은 신도들을 이끌기 위한 수단(방편)으로 세운 것으로 본다. 국가유산청 해설에 따르면 옥천 가산사 산신각(영정각과 함께 시도기념물)은 산신탱화를 모시려고 지은 집이다. 조선 숙종 때(1695년 무렵)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가 확실한 이른 산신도로는 함양 용추사 산신도(1788), 의성 고운사 산신도(1820), 합천 해인사 산신도(1831)가 있다.
이름의 위계
부처·보살은 대개 전(殿), 그 밖의 존재는 대개 각(閣). 산신은 불교 본연의 존재가 아니므로 대개 '각'을 붙이고, 산신전이라 한 절은 드물다. 산신각·칠성각·독성각을 한 채에 합치면 삼성각이 된다.
오늘의 쓰임
자식과 재물을 비는 산신 기도가 지금도 활발하다. 절터를 지키는 가람수호신이면서, 산속 생활의 평온을 비는 바깥 수호신(외호신)으로도 받들어진다. 산신도는 알려진 것만 150점이 넘어 다른 불화보다 많이 남아 있다.
같이 보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신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성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신도」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지정유산 해설
- 전각도감 데이터(202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