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지키는 민간 신앙의 신. 절에서는 산신각이나 삼성각에 모신다. 불교의 신이 아니라, 산마다 있던 산신령이 절에 들어와 처음에는 불법을 지키는 신중의 하나로 끼었다가, 뒤에 원래의 성격을 되찾아 제 전각을 얻은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에 산신각이 있다. 이 사이트 집계에서도 산신각과 삼성각을 합치면 대웅전 다음으로 흔한 전각이다. 경전 어디에도 없는 신이 그렇다는 것이 한국 불교의 토착화를 말해 준다. 자식과 재물을 비는 산신 기도가 이 앞에서 많이 올려진다.
어디에 모시나
산신각 또는 삼성각. 불교 본래의 것이 아니라 하여 전(殿) 대신 각(閣)이라 부르는 것이 통례이고, 산신전이라 한 절은 드물다. 우리나라 불교사의 초기·중기 절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차차 나타났으며, 불교 교리에 익숙하지 않은 신도들을 이끌기 위한 수단(방편)으로 세운 것으로 본다. 삼성각에서는 치성광여래(칠성)·독성 그림과 나란히 걸린다. 옥천 가산사 산신각처럼 산신탱화를 모시려고 조선 숙종 때 지은 집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예도 있다.
어떻게 알아보나
그림(산신도)이 중심이고 산신상을 함께 두기도 한다. 깊은 산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흰 수염 백발의 노인이 호랑이에 기대앉아 있고, 곁에서 시중드는 이(시자)들이 차를 달이거나 복숭아·석류 같은 공양물을 든다. 호랑이는 산신의 심부름꾼이자 산신이 모습을 바꾼 것(화신)이기도 해서, 그림에서는 고양이처럼 귀엽고 장난스럽게 그려진다. 드물게 여성형·제왕형·무장형·승려형 산신도 있어, 청량사 대웅전 산신도(1937)에는 무속에서 섬기던 여성 산신이 등장한다. 연대가 확실한 이른 예는 함양 용추사 산신도(1788)이고, 남은 산신도 대부분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 것이다.
산악 신앙의 뿌리
산의 신에게 절 안에 전각을 내준 것은 한국 사원 특유의 일로, 불경 안에서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산신 신앙 자체는 오래되어, 중국 사서 후한서 동이전에 예(濊) 사람들이 범에게 제사해 신으로 섬겼다는 기록이 있고, 단군은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신라의 삼산오악, 고려·조선의 5악·5진처럼 나라가 제사하던 산악숭배가 마을의 산신제로, 다시 절의 산신각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이후에는 일본 호랑이 그림의 영향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하는 무서운 호랑이가 그려지기도 했다.
오늘의 신앙
법보신문에 따르면 절의 산신재는 산신이 내려온다는 음력 3월 보름을 기점으로 봄과 가을에 정례화된 곳이 많다. 계룡산 신원사는 음력 3월 10일에 시작한 7일 산신기도를 음력 3월 16일 중악단에서 산신대재로 마무리(회향)하며(1998년 복원), 서울 서초구 대성사는 매월 음력 13일 산신용왕대재를 5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같이 보기
산신각 · 삼성각 · 칠성 · 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