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두칠성을 모신 건물. 북극전(北極殿)·북극보전·칠성전·금륜전이라고도 하고, 수세전(壽世殿)이라 부르는 절도 있다. 이 사이트 집계에서는 135곳에 있으며, 현판 이름은 칠성각(126)이 대부분이고 금륜전(5)·칠성전(6)·북극전(3)·수세전(2)도 쓴다. 한 절에 현판이 둘 이상인 경우가 있어 현판 수 합이 절 수보다 많다.
도교에서 온 신
칠성은 원래 중국에서 도교 신앙과 깊이 얽혀 형성된 뒤 한국에 들어온 신이다. 불교는 처음에 칠성을 단순한 수호신으로 받아들였다가, 수명을 주는 신이라는 본래 성격이 다시 강조되면서 독립된 건물을 지어 모시게 되었다(민족문화대백과). 칠성은 수명신이면서 절을 지키는 가람수호신 구실도 한다.
불교의 옷을 입은 모습
칠성각에는 소재회상도(消災會上圖, 재앙을 없애는 설법 장면)라고도 하는 칠성탱화를 모신다. 민족문화대백과는 칠성탱화만을 봉안한다고 적지만, 국가유산청 해설에는 수호신 그림(신중도)·산신도· 스님 영정을 함께 둔 칠성각도 보인다. 가운데 앉은 부처가 치성광여래인데, 옛날 하늘의 중심으로 여긴 북극성을 불교에서 부처로 신격화한 이름이다(도교에서는 자미대제). 좌우에 해와 달을 보살로 만든 일광보살·월광보살, 그 둘레에 북두칠성을 일곱 부처(칠여래)와 관복 차림의 일곱 별 신(칠원성군)으로 함께 그린다. 도교의 별들이 부처와 보살의 자리에 앉은 셈이다.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칠성도는 1569년 작으로 일본에 있고, 국내 대표작으로 천은사 칠성도(1749)와 선암사 칠성도(1895)가 꼽힌다.
한국 사찰에만 있다
민족문화대백과는 칠성각을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전각"으로 적는다. 한국 불교사의 초기·중기 사찰에서는 보이지 않고 조선시대에 차츰 나타나 지금은 전국 대부분의 절에 있다. 불교 밖에서 들어온 신앙으로 여겨 전(殿)이 아니라 각(閣)이라 부르며(민족문화대백과 「삼성각」), 산신각·독성각과 한 채로 합치면 삼성각이 된다.
무엇을 비나
수명 연장과 자손. 억불의 시대에 수명 연장을 비는 서민을 받아들이려고 세운 것으로, 치성광여래가 약사여래와 같은 구실을 맡았다. 그래서 자식 없는 부인, 아들을 바라는 부인, 자식의 수명을 비는 신도에게 인기가 높았다. 국가유산청 해설에 따르면 양산 통도사 극락암 수세전은 처음 칠성각으로 지어졌다가 1903년 대한제국 황실의 무병장수를 비는 불전이 되었다. 서울 진관사 칠성각(1907년 건립)은 6.25전쟁 때도 타지 않고 남았다. 서울 미타사 칠성각 치성광여래도(1897년, 시도유형문화유산)와 청량사 칠성각 칠성도(1935년)도 지정유산이다.
같이 보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성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성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성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성도」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지정유산 해설
- 전각도감 데이터(202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