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제자들, 곧 깨달음(아라한과)을 얻은 성자들을 모신 건물. 응진전(應眞殿)이라는 이름도 흔한데,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뜻으로 아라한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크게 둘로 나뉜다. 석가모니불과 16나한을 모신 응진전, 석가삼존(석가모니불과 양옆 두 보살)과 500나한을 모신 오백나한전. 이 사이트 집계에서는 123곳에 있고, 현판 이름은 나한전(86)·응진전(48)·응진당(8) 등이다. 한 절에 현판이 둘 이상인 경우가 있어 현판 수 합이 절 수보다 많다.
왜 제자를 따로 모시나
민족문화대백과는 나한전을 "수도승에 대한 신앙 형태"라고 정의한다. 나한은 부처가 아니라 수행으로 최고 경지에 이른 성자다. 한국에서는 오백나한이 복덕을 주고 소원을 이루어 주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후대에 오백나한 숭배가 성행했고, 절에 따로 나한전을 세워 상을 안치하는 관습이 생겼다. 통일신라 때 들어온 나한 신앙은 독성각의 나반존자(독성) 신앙으로도 이어졌다. 다만 나한전이라 해도 오백 제자만 따로 받든다기보다 10대 제자·16나한을 구별 없이 함께 공경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표 건물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의 오백나한상은 이름은 영산전이지만 오백나한을 모신 곳으로, 상 하나 하나의 모습이 모두 다르고 영험하기로 이름났다. 청도 운문사 오백나한전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영주 성혈사 나한전(보물, 1985년 지정),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 1981년 지정), 하동 쌍계사 나한전(경남 유형문화유산), 경주 기림사 응진전(보물)이 유명하며, 모두 조선 중·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유산청 해설에 따르면 성혈사 나한전은 1553년에 처음 짓고 1634년에 다시 지었다. 기림사 응진전은 1649년 영산전으로 다시 지어졌고(중창), 1729년 오백나한을 모시면서 영산전·나한전·응진전으로 이름이 바뀌어 왔다. 순천 송광사 응진당(보물)은 1504년에 지어졌고 안에 「송광사 응진당 석가모니 후불탱·십육나한탱」(보물, 1724년·1725년)이 걸려 있다.
같이 보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한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한신앙」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라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백나한」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지정유산 해설
- 전각도감 데이터(202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