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깨달은 제자들. 아라한(阿羅漢)을 줄인 말이다. ’공양받을 만하다’는 뜻의 응공(應供)·’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응진(應眞)·’번뇌라는 적을 죽였다’는 살적(殺賊)도 같은 말이다 — 응진전이 곧 나한전인 이유. 부처가 열반하며 열여섯 제자에게 세상에 남아 불법을 지키라 했다는 데서 16나한 신앙이 나왔고, 부처 사후 가르침을 처음 경전으로 모은 모임(결집)에 모인 500명의 아라한이 500나한이다.
어디에 모시나
나한전·응진전·응진당·영산전(석가모니불과 함께 나한을 모실 때)·오백나한전. 가운데 석가모니불, 좌우에 가섭·아난 두 제자, 그 바깥으로 나한들이 여덟씩 늘어선다. 영천 은해사 거조암에는 석조 오백나한을 모신 법당이 있고, 이름난 나한 기도처로는 청도 운문사·완주 봉서사·서울 삼성암이 꼽힌다. 대표 유물은 순천 송광사 응진당 석가모니 후불탱·십육나한탱(보물, 1724-1725년)이다.
어떻게 알아보나
부처·보살이 이상화된 얼굴이라면 나한은 사람의 얼굴이다. 경전에 모습을 정한 규정이 없어 한 분 한 분 표정과 자세가 다르다. 다리 위에 호랑이를 올린 나한, 파안대소하는 나한, 한쪽 무릎을 세운 나한이 있고, 손에는 염주·경전·붓, 새끼 호랑이·용 같은 동물까지 든다. 다른 주제의 불교 미술과 달리 자유롭게 표현되는 대상이라 절마다 얼굴이 다르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좌부 불교(스리랑카·동남아의 남방 불교)에서 아라한은 수행자가 이를 수 있는 최종 목표다 — 대승에서 보살 아래로 낮춘 것과 정반대다. 16나한에 제빌다라·빈두로 두 존자를 더하면 18나한이다. 중국 저장성 서암사에는 철조 오백나한상이 있고, 고려 태조 때(923년) 양나라에 갔던 사신 윤질이 오백나한상을 가져와 해주 숭산사에 모셨다. 일본 도쿄 라칸사와 교토 다이도쿠사·도후쿠사에도 오백나한상이 있다. 이름은 중국어 뤄한(罗汉), 일본어 라칸(羅漢), 티베트어로는 ’번뇌의 적을 무찌른 이’로 옮겼다.
오늘의 신앙
법보신문에 따르면 2021년 1월 24일 속리산 법주사 북쪽 능선의 바위에서 석가삼존과 십육나한, 동자 둘까지 21분을 바위에 새긴 나한상(마애나한상)이 새로 발견됐다. 암벽에 새긴 나한상은 매우 드물어, 그때까지는 마모가 심한 천안 성불사 마애석가삼존·십육나한상이 국내 유일로 꼽혔다.
같이 보기
나한전 · 영산전 · 석가모니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