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진신사리(부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건물 — 그래서 불상이 없다. 사리를 곧 석가모니의 참몸으로 보아 부처가 늘 그 자리에 머문다고 여기므로, 안에는 불단만 있고 불상을 따로 두지 않는다. 대신 건물 바깥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 계를 주는 돌 단)을 쌓는다. 이름의 '적멸'은 적멸도량에서 왔다. 부처가 『화엄경』을 설한 곳으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 남쪽 보리수 아래다. 이 사이트 집계에서는 19곳이 이 유형에 들며, 원래 이름은 적멸보궁 17곳·적멸궁 2곳·사리각 2곳·사리전 1곳이다. 한 절에 현판이 둘 이상인 경우가 있어 현판 수 합이 절 수보다 많다.
5대 적멸보궁
- 양산 영축산 통도사 (금강계단)
-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사리를 어디에 모셨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 인제 설악산 봉정암
- 영월 사자산 법흥사
- 정선 태백산 정암사
다섯 곳 모두 신라의 자장(590-658)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사리와 정골(머리뼈)을 봉안한 곳으로 전한다. 정암사는 자장이 수마노탑을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전승이 있다(민족문화대백과 「정암사」). 다만 같은 백과의 옛 「적멸보궁」 항목에는 사명대사가 통도사 사리를 나누어 모셨다는 설도 실려 있다. 이 다섯 곳은 불교도의 순례지이자 기도처로 가장 받들어지는 성지다. 이 밖에 임진왜란 뒤 통도사 사리를 나누어 모신 곳으로 고성 건봉사(1605년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되찾은 치아 사리)와 비슬산 용연사(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을 거쳐 모신 금강계단, 국가유산청)가 있다.
같이 보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적멸보궁」
- 전각도감 데이터(2026-09-23)